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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유래

조범7 2009. 8. 6. 10:04

 

예로부터 상당히 광범한 지역에 관상수로 재배되어 온 무궁화는 우리 나라에 자생하고 있었으며 우리 겨레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으로 인식되면서 은연중 나라꽃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무궁화가 나라꽃임을 알고 있으나, 그 근거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여러 문헌에는 무궁화가 우리의 꽃임을 명시하고 있으나 국화로 제정된 정확한 근거에 관해서는 서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무궁화가 우리 민족과 연관되어 나타난 것은 역사적으로 그 연윈이 고조선까지 거슬러 반만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 나라의 상고시대를 재조명하고 있는 <단기고사>에는 무궁화를 근수라 하고 있으며, <환단고기>에는 '환화', '천지화'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의 <규원사화>에 '훈화'로 표현하여 단군시대에 무궁화가 자생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 고대 중국의 지리서인 <산해경>에는 물론 <고금주> 등에도 우리 한반도가 무궁화가 많은 나라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혜공왕 때와 고려 예종 때에는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서 우리 나라를 '근화향'이라 표현할 만큼 무궁화가 많이 피어 있었다.


이홍직의 <국어대사전>에

"무궁화는 구한말부터 우리 나라 국화로 되었는데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라

민 대다수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 나라를 옛부터 '근역'

또는 '무궁화 삼천리'라 한 것으로 보아 선인들도 무궁화를 몹시 사랑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1928년 발행된 <별건곤> 3권 2호에 게재된

<조선산 화초와 동물>편에는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무궁화는 꽃으로 개화기가 무궁하다 안이할 수 없을 만치 참으로

장구하며 그 꽃의 형상이 엄연하고 미려하고 정조있고 결백함은 실로 민족성을 그리여

내었다. 한국을 막론하고 각 민족을 대표하는 꽃이 있지만 우리를 대표하는 무궁화 같이

형으로나 질으로나 적합한 것은 볼 수 없다"고 실려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이 많이 심고 가꾸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인 신부 리처드 러트가 쓴 <풍류한국>에 보면 프랑스, 영국, 중국 등 세계의 모든 나라꽃이 그들의 황실이나 귀족의 상징이 전체 국민의 꽃으로 만들어졌으나 우리의 무궁화만은 유일하게도 황실의 이화가 아닌 백성의 꽃 무궁화가 국화로 정해졌고 무궁화는 평민의 꽃이며 민주전통의 부분이라 쓰고 있다.

 

우리 민족과 무궁화를 결부시켜서 이야기한 것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고, 1896년 독립협회가 추진한 독립문 주춧돌을 놓는 의식 때 부른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내용이 담겨질 만큼 은연중 무궁화를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세계 만방에 우리 민족의 독립이 선포됨에 따라서 수립된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3·1 독립선언서 전문과 임시정부의 각료(閣僚)단, 임시헌장, 선언문, 정강(政綱)을 실은 독립선언서를 발행하였다. 이 대한독립선언서의 상단에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태극기와 무궁화가 도안되어 자리잡고 있다.

 

무궁화가 우리 나라 국화임을 명실상부(名實相符) 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하고 반복되는 애국가의 후렴구일 것이다.

애국가는 우리 나라의 국가(國歌)로 국기와 더불어 우리 나라를 대표하고 있다.

개화기의 어려운 정치상황에 위기의식을 느낀 몇몇 선각자들에 의해 애국가류의 시들이 계속해서 발표되었는데, 이때 오늘날 애국가의 시초로 보이는〈무궁화 노래〉가

《독립신문》에 실렸다. 이 노래는 민중들 사이에 퍼져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 의지를

고취시켰다. 《동아일보》에 실렸던〈조선국화 무궁화 내력〉은 미흡하지만 무궁화가 우리 나라의 국화가 되기까지의 내력을 살펴보는 데 기초가 되었다.

‘고래로 조선에서 숭상한 근화가 무궁화로 변해 국화가 되기까지’는 가장 함축적으로

무궁화의 내력을 잘 표현하고 있다.

 

고래로 숭상되어 오던 무궁화는 개화기부터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으로 재인식되었고 대한제국시대에는 이미 국화로 언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일제의 침략기에는 독립지사들에 의해 우리 국가의 표상(表象)으로 지켜졌다. 이러한 역사성을 바탕으로 무궁화는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되면서 국가의 위상(位相)을 정립하기 위하여 정부 체제를 확립하는 과정에서부터 국가를 상징하는 휘장으로 의장화되는 등 우리 나라 국화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무궁화가 우리 국민과 애환을 같이하며 겨레의 얼로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꽃으로 확고히 부각되었고, 고통 속의 민족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역사와 더불어 자연스레 겨레의 꽃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옛날부터 쓰여 오던 무궁화라는 한글명은 16세기부터 나타나는데 한자로는 목근화(槿)로 표기하고 있었다. 이로써 볼 때, 목근화 → 무긴화 → 무깅화 → 무궁화의 형태로 변했으며 여기에 뜻이 좋은 무궁화()로 차음()하여 표기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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