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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일본군 장교에 창씨개명 2번했지만 친일파는 아니다??

조범7 2009. 11. 6. 11:27

 

▲ 박정희의 만주군 혈서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 만주신문 > 사본. 해당 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습니다"라고 밝히는 등 일제에 적극적인 의사를 밝히고 있다. 붉은색 원 안의 사진의 인물이 박정희이다.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사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경상북도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중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하였으나 연령 초과로 1차 탈락하자, 지원 서류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와 함께 채용을 간곡히 호소하는 편지를 제출하며 같은 해 재응시했다.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 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계원(係員)을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만주신문』 1939.3.31. 7면)

 

                                                                                       <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Park_Japan.jpg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소위에 임관하기 직전

                            1944년 6월 말, ‘견습 사관’으로 있을 때의 모습. <출처; 한겨레 신문>  

 

<박정희의 창씨개명>

1)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일제시대 말엽에 조선인들은 강제로 창씨를 개명당한다. 박정희도 예외가 아니어서

   창씨개명을 하는데 그 이름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이다.

   당시 창씨 개명한 조선인들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창씨 개명에는 조선인의 뿌리가 남아있다. 
 
   박정희의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란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다카키 마사오란 이름은 박정희란 조선 이름을 응용한 것이다.

   다카키(高木)란 성은 고령 박씨에서 따온 것이며

   또한 마사오(正雄)란 이름은 정희(正熙)를 변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정희는 다시 한 번 창씨를 개명하게 되는데

   새로 개명한 창씨에서 그의 적극적 친일의 흔적이 나타나는 것이다.

 

2) 오카모토 미노루

   이 과정에서 박정희는 한국 이름에서 따온 ‘다카키 마사오’라는 이름을

   완전한 일본식 이름인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로 다시 한번 바꿨습니다.

   그 시기는 분명치 않은데, 만주군관학교에 이어 일본육사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가 당당한 ‘황국신민’으로 재탄생한 사실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고,

   이를 영원히 유지하고자 했던 열정이 강력했음은 엿볼 수 있습니다.

 

           <출처; 2004년 8월 25일 [브레이크뉴스]에 실린 "박정희,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